여백이 방

이 방은 작년 6월에 세상을 떠난 여백의 글을 모아두는 곳입니다.

신록1 2007. 3. 24. 00:55


와~ 쥑이는 날씨..좋은 휴일입니다.

한 번쯤 비가 더 내리면 이제 겨울은 저만큼 물러가고
성큼 다가온 봄 기운에 더욱 나른해지겠지요.

원래 점심메뉴는 자장면.
매월 셋째주에 자장면을 후원해 주시는 단체가 있는데
2월에는 사정이 생겨 안 오신다는 연락이 와서
오늘 점심은 참치김치찌개였습니다.

게눈 감추듯 맛있게 한 그릇(?) 뚝딱 먹고 방으로 올라오는데
문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동욱이 : 지금 할머니 없어..빨리 가 보자.
준원이 : 안돼..할머니 무서워..혼나~

동욱이 : 괜찮아, 할머니 밥 늦게 먹구 올라와~
준원이 : 그래두 안돼..할머니 소리지르면 엄마가 울어~

으~~~~~~~~
두 넘의 꼬맹이가 문 뒤에 서서 뭔가 작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되돌아 갔다가 잠시후에 살금거리고 다시 와 보니..
크~~~~~~~~

어제 우리의 쌀랑하는 남직원들을 협박하고 반 강탈하다시피
수거해온 초코렛을 그 넘들이 넘보고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죠 ㅎㅎ~

그래두 그 넘들 주머니에 섭섭치 않게 넣어 주었건만
이 넘들 성에 안찼던지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네요.

내 모습을 샛별이가 먼저 발견하고 하.하.할머니다~ 하니까
돌아보는 두 넘들..하이고 그 표정, 천만금을 줘도 못보죠!

이걸 어떻게 하나...곰곰히 생각하며 두 넘을 쳐다보니까
그 중에 한 살 더 먹은 동욱이란 넘..

동욱이 : 할머니, 왜 빨리 왔어요?
할머니 : 그래, 한 그릇 덜 먹구 와서 미안타!

준원이 : 할머니. 사탕 먹으면 이가 아프지요~
할머니 : ???

준원이 : 할머니는 그래서 이가 아프지요~
할머니 : 띠~~옹..

동욱이 : 할머니, 또 밥 먹으러 갈거지요~
할머니 : 꼬~~당!

한 넘은 이 아픈 할머니를 지혜롭게 이용하고
한 넘은 먹성 좋은 할머니 부끄럽게 이용하고

이 넘들아..
내가 혼자 먹을려고 꼬불쳐논 줄 아냐?
두고두고 너그들 줄려고 그런거지?
내가 그딴 여자로 보이냐??

준원이,동욱이 말끄러미 쳐다보며 결정타 한 방 날리네요..
<할머니...그딴 여자가 모예요???>

하하하하...졌다 졌어..이 넘들 때문에
비상식량 초코렛 몽땅 날려도 너무 기분좋게 웃음이 나왔습니당!!

이 넘들..
준원이, 동욱이..지난 금요일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 받고 왔습니다.

여늬 아이들과는 다르게 입소된 넘들.
겉으로는 장애아로 보이지 않아 지능검사와 신체검사 등등...하고 왔습니다.

만 5세와 6세인 이 넘들..검사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제 우리 곁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장애아들의 시설로 보내야 때가 가까워 오니
키우던 엄마들의 마음이 갈래갈래 찢어지나 봅니다.

아이들도 뭔 눈치를 채고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댑니다
뭘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 짜증내고 심통부립니다.

너무 갓난아이라 들어올 때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심장이 약해 얼굴이 늘 파리하고 숨소리 고르지 못했던 넘..

그랬던 넘들이 걷고 뛰고 일을 저지르고 유치원에 다니며
온갖 재롱에 아이키우는 재미 듬뿍 맛보여주던 이 넘들이

떠나고 나면...분명 그 자리는 다시 채워지겠지만
어디에서건 이 넘들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빠르면 2월 안으로 다른 시설로 보내질 수 있다는데...
어디서건 이넘들 외톨이 되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절대 너희들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 너희들과의 지낸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마....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쳐다보는데...

이 넘들..다시 한번 물어 보네요..
할머니..할머니는 그딴 여자 아니지요오오오~~~

헉! 무섭당!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정곡을 찌릅니다.

세월이 지나 바쁜 생활에 동동거리다보면
어느 새 지 넘들 다 잊을 줄 알고나 있듯이 나를 채근합니다..

할머니이~~~~~~~~~~~ 할머니는 그딴 여자 아니지요???
물론!...나는 그딴 여자 아니란다~

오늘 오후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 앉습니다.
함께 올려진 사진 중에 준원이란 넘과 샛별이가 있지요.

이 녀석들..어디로 가든 내가 너희들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이냐..
이 넘들 주머니에 듬뿍 넣어준 사탕 한 개 꺼내어 와작거려 봅니다.

달콤한 사탕에서 왜 이리도 쓴 물이 배어나오는 걸까요?
영문 모르는 지나가는 샘들 한 마디 거듭니다.

샘님...밥 한 그릇 덜 먹지 말구 그 단 것 좀 입에서 빼내세요 ㅋㅋㅋ..
내가 미칩니다 진짜로~~~~~~~~~~~ 미치겠습니다용!!

여백.  날짜 : 2004.02.15 16:27

 

          여백은

         

          1958년생으로 장애우 시설 팀장으로

 

           있다가 작년(06년)6월 암으로 타계하였습니다.

 

           50여 평생 독신이었지요.

 

           연두색 저와는 5년전에 만나 동생처럼

 

           친구처럼 간혹은  얘인처럼 지내 왔었습니다.

 

           같은 성씨이기에 또, 같은 싱글이기에

 

           서로에게 큰 위안이 되었지요.

   

 

           여백은

 

           암 발병 후 서너달 투병생활을  미국으로 이민 간

 

           부모형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로운 그의 병상생활에 소홀했던게

         

           많이 후회되네요. 

 

 

           사실 제가 요새 맘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 같이 허한 밤이면 그가 남겨논

 

           맑은 글들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저에겐 먼저 암으로 간 애어미에 이어

 

           두번째로 암으로 보낸 친동생같은 여인이 되겠군요.

 

 

           오늘도 텅 비어있는 그의 플래닛을 돌아보다 왔습니다.

 

           주인없는 그의 플래닛에 딱 한명인 친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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