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커튼 이규리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래서 사실 비밀도 아니지만 가리면서 다 보여주는 것도 전략이다 봐라, 모텔 입구 세차장 천막같은 커튼들은 해답 달린 문제지 같다 조급한 승용차 비닐커튼 아래로 파고 들면 미끈덩 들어온 물체의 낯짝을 더러워진 자락이 쓰윽 쓸어준다 덕.. 마음의 항로... 2019.08.01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문. 정 희 -네루다풍으로 사랑,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구절을 이 나이에 무슨 사랑? 이 나이에 아직도 사랑? 하지만 사랑이 나이를 못 알아보는구나 사랑이 아무것도 못 보는구나 겁도 없이 나를 물어뜯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 마음의 항로... 2019.07.25
설산에 가서 雪山에 가서 문정희 소리 내지 말고 눈물 흘리지 말고 한 사흘만 설산처럼 눕고 싶다. 걸어온 길 돌아보지 말고 걸어갈 길 생각할 것도 없이 무릎 끓을 것도 없이 흰 옷 입고 흰 눈썹으로 이렇게 가도 되는 거냐고 이대로 숨 쉬어도 되는 거냐고 이렇게 사랑해도 되는 거냐고 물을 .. 마음의 항로... 2019.07.08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詩 정현종 어디 우산을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마음의 항로... 2012.05.14
벚꽃 핀 술잔 벚꽃 핀 술잔 함성호 마셔, 너 같은 년 처음 봐 이년아 치마 좀 내리고, 말끝마다 그렇지 않아요? 라는 말 좀 그만 해 내가 왜 화대 내고 네년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 나도 한시름 덜려고 와서는 이게 무슨 봉변이야 미친년 나도 생이 슬퍼서 우는 놈이야 니가 작부ㄴ지 내가 작부ㄴ지 술이.. 마음의 항로... 2012.05.07
신비의 꽃을 나는 꺽었다 "신비의 꽃을 나는 꺽었다" 세상의 정원으로 나는 걸어들어갔다 정원 한가운데 둥근 화원이 있고 그 중심에는 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그 꽃은 마치 빛과 같아서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나는 둘레에 핀 꽃들을 지나 중심에 있는 그 꽃을 향해 나아갔다 한낮이었다 그 길이 .. 마음의 항로... 2012.04.17
우울한 육체의 시 John DeAndrea 우울한 육체의 시 ,,,생각 많은 몸 신현림 열일곱의 몸은 은비늘 휘날리는 청어처럼 이쁘고 스물넷의 몸은 대리석처럼 맑고 스물아홉의 몸에 황혼이 물들면 푸른 녹차 냄새가 나오 서른에서 마흔, 마흔에서 쉰 살의 몸 늙어가는 몸을 추하다고 생각지 마오 단지 서러울 뿐 서럽.. 마음의 항로... 2012.04.17
늙은 여자 늙은 여자 최정례 한때 아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늙었다 한때 종달새였고 풀잎이었기에 그녀는 이가 빠졌다 한때 연애를 하고 배꽃처럼 웃었기 때문에 더듬거리는 늙은 여자가 되었다 무너지는 지팡이가 되어 손을 덜덜 떨기 때문에 그녀는 한때 소녀였다 채송화처럼 종달새처럼 속삭였.. 마음의 항로... 2012.04.12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다 Mitchev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다 문정희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 몸이 깨어져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마음의 항로... 2012.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