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과 여행정보

보도각 백불

신록1 2013. 10. 24. 13:47

1906-7년 사이 찍은 독일인 헤르더 산더의 사진첩에 들어있는 대한제국 시절의 모습. 

 

현재의 보도각 백불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1925년 작품에 서울 홍은동에 있는 ‘普渡閣 白佛’이라 이름한 채색 목판화로당시 유명하던 이 장소를 묘사했다. 


보도각 백불의 정확한 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 좌상(弘恩洞普渡閣磨崖菩薩坐像)'이며, 흰색의 호분(胡粉)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어 백불(白佛) 또는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부대부인 민씨는 고종의 천복을 비는 등 왕실과 인연이 깊은 관음보살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보도각 백불은 바위의 크기에 맞게 양 무릎을 넓게 벌리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에 쓴 원통형의 보관으로 보아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으로 짐작되지만 보관에 연꽃이 새겨져 있어 정확하지는 않다. 1973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됐다.


몇년전 인터넷에 윗사진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해수관음"
어릴 땐 그렇게 불렀다.
이 절에서 증조모께서 치성을 드리시고 조부를 얻으셨다 하여 
서너살 때부터 어른들에게 이끌려 다니던 절이다.
자하문 밖,
지금은 북악,구기,자하문터널 등으로 시내가 되었지만,
50년대 말이나 60년대 까지만 해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효자동 전차 종점에서 자하문 고개를 넘거나,
아니면 문화촌쪽에서 하천를 따라 올라가는 곳이었다.
백옥 같이 하얀 부처님과 맑아 파랗기까지 한  개울물,
가을이면 시큼한 능금을 먹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어느 핸가는 튀각에 체해서 
이십이 넘도록 튀각을 먹지 못했었다.
60년대 초 비구,대처 대립으로 종권이 자주 바뀌면서 
우리집안과 인연이 멀어진 절이 되었지만 아주 가끔씩은 가 보는 절이다.
*** *** ***
예전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
술취한 남자가 백불 앞을 지나다가
하얀 분칠한 부처님이 너무 아름다워 
기어 올라가 입 맞추다 입이 붙어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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